[가정예배 365-9월 17일] 표적을 구하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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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257장(통18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6장 1~12절

말씀 : 혼란한 시대에 나타나는 특징은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합리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면서도 신비로운 체험, 기적, 신유에 주목합니다.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 암울한 미래를 눈에 보이는 증거를 통해 봄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도 보이는 표적을 통해 안정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꼭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랑 우정 같은 감정이나 공기와 미세먼지 같은 물질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람의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유리한 대로 믿습니다. 보여도 안 보인다 하고 안 보여도 보인다고 합니다.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예수께 나아와 표적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세대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표적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사기 6장에 보면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표적을 구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표적에 응답하십니다. 민족의 구원을 위해 떠나는 모세에게도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심으로 모세와 함께하심을 증명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기간에 많은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이처럼 표적을 구하는 세대에게 얼마든지 표적을 보여 주실 수 있었지만 그들은 내적인 회개가 없이 외적인 표적만을 구했습니다. ‘믿을만한 증거의 부재’가 아니라 ‘믿으려는 마음의 부재’로 인해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늘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표적을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그 어떤 표적보다 더 큰 표적을 주셨습니다. 죽을 인생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살리셨다는 표적입니다. 이보다 더 큰 표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을 충분히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또 다른 표적을 원합니다.

현재의 기적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기적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더 많은 표적을 구하기 전에 겸손한 마음을 구해야 하며 이미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며칠 전 한 50대 엄마가 뇌사상태에서 여러 사람에게 생명을 나누고 하늘의 별이 됐다고 합니다. 그 장기를 받은 사람에게는 이 일이 기적입니다. 기증을 받은 가족들이 아무리 부인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죽으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받은 말씀 중에 실천한 말씀이 몇 가지입니까. 주께서 주신 말씀으로 회개하고 실천했다면 우리의 삶에는 이전보다 더 큰 능력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세대에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28절) 우리가 표적을 구하기 전에 주신 말씀을 잘 지켜내어 참된 기적과 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 사랑의 예수님, 우리가 표적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범기 오솔길교회 목사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