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9월 20일]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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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538장(통32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8장 15~20절

말씀 : 오늘 본문은 성도와 교회의 의무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먼저 그 사람에게 다가가 권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권면했는데도 듣지 않는다면 다른 성도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사람이 함께 권면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해서 교회가 그 사람에게 권면해야 하고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모든 권면을 무시한 이에게 공동체의 소외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회개의 압력을 가해 다시 반성하는 마음을 갖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베드로가 용서하는 사람의 힘겨움에 대해 의문이 생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당시 유대 관습에서는 3번까지 용서하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베드로가 7번을 들고나온 것은 상당한 자부심과 관대함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인간적 관대함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까지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이 말씀은 인간의 가슴속에서 가시넝쿨처럼 자라나는 복수심을 무한한 자비의 법으로 바꾸어 놓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원죄 이전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스스로 그 가시에 찔리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과정이 예수님을 좇는 이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 속에서 내게 범죄한 자를 용서해야 할 의무는 내게 있지만 내 힘으로는 할 수가 없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은 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입니다. 만 달란트 빚진 자를 주인이 불쌍히 여겨 탕감해 주었더니 그가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빚을 갚으라 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여기에서 ‘동료’라는 낱말이 쓰인 것도 참 귀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동료이고 십자가 앞에 범죄한 형제와 용서해야 할 자신이 모두 다 죄인으로서 동료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지은 형제를 권면하고 용서하는 일은 십자가의 구속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속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죄를 들추고 도려내는 일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일입니다. 회개를 권면하고 죄를 용서하는 십자가의 길에 우리가 등한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기도 :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 우리에게 나의 죄를 드러내고 도려낼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또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범기 오솔길교회 목사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