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8일] 편견의 색안경을 벗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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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내 너를 위하여’ 311장 (통 18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전서 4장 3~5절

말씀 : 어느 날 나귀가 등에 짐을 잔뜩 싣고 길을 걷다가 그만 연못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귀는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연못가에 있던 개구리가 소리를 쳤습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연못에 좀 빠졌다고 뭘 그리 엄살이냐. 나는 너보다 몇십 배나 몸집이 작지만, 연못에서 헤엄치고 논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개구리가 바로 우리 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기준으로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난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오늘 본문에서 세 종류의 판단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첫째 사람에게서 받는 판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도 바울의 말처럼 매우 작은 일입니다. 신경 쓸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런 일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소신이 없고 줏대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내가 자책할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한 양심의 판단입니다. 물론 첫 번째 판단보다는 솔직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양심의 판단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양심의 판단을 고집하다 보면 독선적이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는 사람이 되기가 쉽습니다. 셋째 주님의 판단입니다. 모든 일 앞에 “주님이 보시기에는 어떨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내 처지가 아니라 주님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성령님의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 2:1)고 했습니다. 주께서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요 7:2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결코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롬 2:11, 골 3:25)

생각이 다른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내게 다가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만나보고, 한번 말해보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입니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판단하기보다는 이해의 마음을 가질 때 감춘 것이 드러나고 마음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편견의 색안경을 벗고 주님의 눈으로 사람을 만나기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심판 주가 되시는 하나님, 저희는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판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이웃을 판단하기보다는 인정하고 격려하며 세워주고 협력하며 서로 도우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문병하 덕정감리교회 목사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