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21일] 하나님의 긍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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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십자가 그늘 아래’ 415장(통 471)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10장 46~52절

말씀 : 영국의 청교도 시대 명 설교가였던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 이 세 가지는 하나님 품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의좋은 세 자매”라고 말하며 “사랑이 애인을 방문하는 친구와 같은 것이라면, 긍휼은 병자를 방문하는 의사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은혜가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애정이라면, 긍휼은 죄의 결과로 비참한 상태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한 애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긍휼히 여겨 달라고 외칩니다. 히브리어로 ‘긍휼’을 ‘라훔’(rahum)이라고 하고, ‘긍휼히 여기다’는 ‘라함’(raham)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胎(태)’, 즉 ‘자궁’을 ‘레헴’(rehem)으로 씁니다. 긍휼과 긍휼히 여기다라는 단어는 이 ‘자궁’이라는 명사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왜 긍휼이라는 말이 어머니의 태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나왔을까요? 어머니의 태에 들어있는 자식은 오직 어머니의 영양으로 성장하고 그 안에서 살 때가 가장 안전하고 평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베푸시는 사랑이 어머니가 자식을 품고 있는 것 같기에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긍휼은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긍휼은 무시해도 될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버림받아야 할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긍휼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엘레오스인데 이 말은 오늘 본문에 불쌍히 여기다로도 번역돼 있습니다. 이 긍휼, 이 불쌍히 여김이 하나님에게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신다는 말이 수없이 반복됩니다. 시편 103편 13절에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라고 했고 요엘서 2장 18절에도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하나님 앞에 긍휼을 얻고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까. 먼저 주님의 긍휼을 갈망해야 합니다. 온 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고 했습니다. 주 하나님의 긍휼을 받기를 원하면 형제를, 이웃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구하고 이웃을 긍휼히 여겨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기도 :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저주받아 마땅할 저희를 긍휼히 여겨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저희의 관심거리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아파하는 것에 저희도 아파하게 하소서. 아버지가 저희를 긍휼히 여김같이 저희 또한 이웃을 긍휼히 여기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문병하 덕정감리교회 목사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