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24일] 경건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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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너 성결키 위해’ 420장(통 21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야고보서 1장 26~27절

말씀 : 어느 날 사탄이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졸개들 가운데 하나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네가 저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교회로 내려가 하나님이 죽었다고 믿도록 교인들을 설득시켜주면 좋겠다.” 사탄의 졸개는 명령대로 믿음이 좋다는 교회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온종일 교인들이 사는 집을 돌아다니며 들여다보고 사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사탄이 물었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죽었다고 믿도록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시켰느냐.” 졸개가 대답했습니다.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들을 다 돌아보았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과 똑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활 자체가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화지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례를 받고 교회에 입교하고 직분을 받고 봉사를 하며 전도를 했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 믿는다는 것을 인정했는데 정작 마지막 날 주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면 어찌할 것입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염소와 양을 나누는 심판의 자리에서 나는 왜 염소의 자리에 가야 하느냐고 아무리 소리쳐도 결국 지옥의 숯가마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서 돌아서라고 권면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반응이 싸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질주의에 젖어 사탄에게 영혼이 빼앗겨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독교가 경건의 능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생물입니다. 물질주의가 판을 칠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영적인 공허감은 더해 갑니다. 따라서 영적인 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禪)이니 요가니 초월명상이니 하는 것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기독교는 사람들의 영적인 것을 담을 능력을 잃어버렸기에 쇠퇴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은 헬라어로 드레스케이아인데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뜻의 드레스큐오에서 파생했습니다. 즉 경건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왜 기독교는 능력을 잃어 가는 것입니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인의 마음속에서 예배를 잘 드리려고 하는 경건이 실종됐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물들지 말고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경건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선 삶의 자세로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기도 :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저희로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세속에 물들지 않으며 환난 중에 있는 이들을 돌보게 하소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문병하 목사(덕정감리교회)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