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26일] 시기와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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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412장(통 46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야고보서 3장 13~18절

말씀 : 오래전 어느 모임에서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금방 친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 친구 조심해. 뒤통수를 조심하라고.” 께름칙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알았어!! 내가 보기에는 좋은 친구던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 번 들은 말은 죽지 않고 고삐가 돼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경계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친구는 나에게 더욱 살갑게 대했고 배려도 남달랐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났을 때 오히려 뒤통수를 조심하라던 친구로부터 배반의 칼을 맞아야 했습니다. 배신감에 피를 흘리는 나를 찾아와 위로한 것은 그 친구였습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친구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 시기와 질투로 이간질한 소리를 구분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과 의심의 고삐를 놓지 못한 내 마음을 탓해야 했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함께 다닙니다. 질투가 시기보다는 형입니다. 시기가 ‘갖지 못한 사람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라면 질투는 ‘가진 사람이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키가 작은 남자가 키가 큰 남자를 보며 느끼는 것이 시기, 여자에게 인기가 남자 친구를 둔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달라붙는 여자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질투입니다.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은 대개 세 가지 반응을 보이는데 첫째가 우울감입니다. 상대의 재능을 인정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한탄하면서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야심입니다. 어떻게든 상대방과 비슷하게 혹은 더 앞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분노입니다. 상대방에 대해 험담을 하고, 뒤에서 모략을 꾸며 해코지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시기와 질투를 조장하는 곳입니다.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기심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시기심에 눈이 먼 사람들은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합니다. ‘부러워하는 것은 지는 것이다’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를 시기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기와 질투가 없다고 자신을 속입니다.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험담입니다. 과장과 거짓을 섞어 상대를 중상합니다. 시기가 심한 사람들은 서로를 금세 알아보고 힘을 합쳐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동지를 만나면 죄책감이 줄어들고 그 힘은 두 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를 버리지 않으면 사람 사이에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마음 밭에 시기의 잡초를 뽑아 버리고 거짓과 편견이 없는 선한 행실을 통해 화평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화평의 열매는 관용의 생각과 양순의 수고와 긍휼의 마음을 통해 맺어집니다.

기도 : 의의 열매를 찾으시는 하나님, 위로부터 난 지혜의 온유함을 주옵소서. 시기와 다툼이 난무하는 곳에서 지혜와 총명으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문병하 목사(덕정감리교회)

출처 : 더미션(https://www.themission.co.kr)